[도서/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w.김주혜)
줄거리
작은 땅의 야수들』은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 야망, 갈등, 그리고 얽히고설킨 운명을 그린다. (줄거리를 세세하게 하나씩 적으면 끝도 없어서 생략, 등장인물도 꽤 되고 서사도 가득하다..)
감상평
『작은 땅의 야수들』… 제목처럼, 정말 다들 야수 같다. 이성보다는 모두 본능과 감정에 휘둘려 산다. 작은 우연과 인연이 인물들의 인생을 뒤흔드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한순간의 선택이 추락의 결정타가 되기도 한다. 읽는 내내 "왜 이러는 거야", "제발 그만. 지랄 금지" 같은 말이 절로 나오는데 또 한편으론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하는 마음이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소설은 역사적 사건 자체를 중심에 두지는 않는다. 독립선언, 2차 세계대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배경으로 살짝 지나갈 뿐. 오히려 조선인을 억압하고 착취한 일본 순사들에게 웬 서사를 덧붙이려는 듯한 흐름은 솔직히 읽으면서 꽤 불쾌했다.
등장인물들이 꽤 많은데 모두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어떤 순간엔 좋았다가도 멀리 안가고 “꼭 그래야만 했니?” 싶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해는 안 되지만 시대적 배경이 그렇다 치고 따라가긴 했다. 근데 곱씹어 보면, 이 소설에서 남을 위해 살았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최악의 결말을 맞는다. 독립운동가로 앞장섰던 정호는 배신당하고 누명을 써서 감옥살이나 하고 반대로 친일하며 자기 이익만 챙긴 성수는 옛 친구의 부탁을 마지못해 들어줬다가 (사실 들어주기 싫었으나 좋아하는 여자가 지켜보고 있어 가오때문에 수락) 그걸로 “독립에 도움 줬다”는 명분이 생겨 죄도 면하고 부를 영위한다.현실적이긴 해
주로 옥희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가장 애틋하게 다가오는 인물도 역시 옥희가 아닐까. 옥희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갈 땐 “애썼다, 행복해져라” 하고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되다가 남자 잘못 만나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할 땐 정말 옛말처럼 도시락이라도 싸서 쫓아가 말리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속상했다. 옥희야.......
특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질문. 여기 나오는 남자들에게 결혼은 뭘까? 여자들을 한때 자기의 전성기의 증표로 보는걸까? 이걸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나... 남자들은 언제든 다시 여자를 찾아가 취하고 회상하며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할 수 있지만 여자들은 그 모든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 홀로 남아 고독하게 그 사람을 그리워할 뿐이다. ‘남자들의 야망’과 ‘여자들의 희생’이 어떻게 엇갈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더 사랑이라는 감정이 씁쓸하게 느껴진다..1순위를 사람에게 둔 삶은 그 사람이 떠난 뒤 더 허무하고 더 비참해진다는 것.
누군가에게 자신을 다 걸었을 때 그 공백은 더 크고 오래간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
정호는 옥희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 머릿 속에는 언제나 네가 있다고.
마치 집이라도 되는 양, 넌 아예 그곳에 눌러 앉아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옥희는 아직 어렸지만, 남자들이 이 집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기란 쉬웠다. 그들의 동기는 단순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것. 옥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건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면서, 여자들은 자신 또한 살아 있음을 느낀 적이 있을까?
맞붙는 싸움마다 매번 승리로 끝내는 나의 비결을 배우고 싶다면, 바로 이거다.
다른 건 다 잊어버리고, 절박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삶은 견딜만 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작은 땅의 야수들』을 가장 잘 요약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분노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결국엔 그때 그 아련한 기억들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