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의 시선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이자, 심시선이라는 존재로부터 이어진 가족들의 이야기다. 가족들은 심시선의 사망 10주기를 맞아 그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 제사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각자 심시선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을 준비하기로 한다. 가족들은 자신의 삶과 심시선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녀를 위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감상평
심시선이라는 인물은 소설 속에서 단순한 어머니나 아내가 아니라 가부장제 시대에 맞서 싸운 여성으로 그려진다. 여성으로서 억압받고 무시당했던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아왔고 그의 시선과 가치관은 그가 죽은 후에도 후대에 영향을 미친다. 심시선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독자들에게까지 깊이 남게 된다.
열혈 팬도 많고, 안티팬도 많은 심시선.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실제 인물을 떠나보낸 것처럼 묘한 그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가족들의 가장 대단한 점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의 관점을 헤아리고 말 한다미로 힘을 건내줄 수 있다는 것. 툭툭 건내는 말로 보여 간단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넨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책에 나오는 가족들의 대화도 꽤 재미있다ㅋㅋ 엄마의 책을 인용하면서 그 말로 다시 엄마에게 반박하는 자식들의 모습이라던가
“나 엉망이야?”
“아니.”
“그럼 진창이야?”
“아니야.”
이런 식의 대화들. 유쾌하면서도 따뜻하다.
이런 가족이 어딨어? 하며 판타지같다가도 그들의 대화를 읽다보면 어느새 정이 들고 위로 받게 된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심시선의 제사지만 제사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형식보다 더 중요한 건 각자 자기 방식대로 마음을 담아 준비하는 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다는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심시선을 본받고싶다.
++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진정한 재능은 꾸준함...
"에디 우드 고, 라는 말은 서핑 대회 때 어머어마하게 큰 파도가 왔을때 누가 한 말이라지만 사실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겠다."
"결정적은 순간에 타인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것인가, 스스로가 다치게 되어도, 그런 의미로?
"언니는 따옴표 같지, 늘 진지하니까. 나는 좀 정신없어서 쉼표같고, 우윤이는 기본 표정이 물음표고, 의외로 해림이가 단단해서 마침표고 ...... 너는 말줄임표다. 말줄임표."
각 캐릭터의 특성을 문장부호에 표현한 점이 재밌다. 페이지를 꽉 채우는 묘사보다도 더 와닿는다.
어머님 보고싶네. 난정은 생각했다. 피곤할 때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싫지 않았다. 어떤 순간엔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 관계였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지독하게 괴롭혀 놓고 사과를 바라니 죽음으로 회피하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남.
"엄마가 나 입시 미술할때 학원에 왔었어. 선생님이 내가 색채감이 좋다고 칭찬하니까, 엄청 당연하다는 듯 자기 닮아서 그렇다고 대꾸하는거야. 요새 말로 하면 리액션형 인간 있잖아. 상대방에게 맞장구를 치다가 툭 튀어나온 말이었는데, 자기도 좀 흠칫했던것 같았지만 뻔번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더라고. 온 국민이 내가 친딸이 아닌거 잊지 않는데 혼자 맨날 착각했어.
엄마가 착각 할 때마다 좋았어."
"야. 울지마. 또 울지마. 세명 낳았으면 네명 낳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 뭘 그런거에 울어?"
이 책을 펼쳐지자마자 나오는 심시선의 복잡한 가계도에 당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닐거같다. 심시선 아래에는 딸이 셋이 있고, 여기서 화자는 재혼한 남편의 딸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피가 섞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라 가족들이 잘해줘도 타인의 시선이 고통이었을 거다. 그걸 언니들이 "그게 뭐 어때? 셋이나 넷이나"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쳐주는 장면은 참 뭉클하다. 그 무심하지만 다정한 한마디가, ‘피가 섞였느냐’는 문제를 생각보다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준다.
그 시대에 있기 힘든 엄마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엄마 덕분에 새엄마가 나오는 옛날이야기들을 다 무시할 수 있었고 손님들이 많이 오는 집이었잖아요. 손님들이 꼭 오빠만을 두고 '크게 될 놈'이라고 칭찬했거든요. 어느 날 엄마가 그게 싫었는지 매번 반복해서 말하는 손님한테 "그럼 우리 딸들은요? 작게 될 년들인가?"하고 확 무안을 줬어요. 그때 제 어깨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딸들'에 제가 포함된다는 걸 알았고 기뻤던 기억이 있어요.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책 한줄요약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가장 마음에 든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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