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설] 휴먼의 근사치(w.김나현)

줄거리

먼 미래, 지구는 기후변화로 인해 끝없이 내리는 비에 잠기기 시작한다. 도시들은 물에 잠기고, 인류는 터전을 잃었다.
수해는 인류가 쌓아온 무수한 기록들을 파괴했고, 많은 이들이 가족과 일상을 잃는다.

 

한이소 역시 그중 하나였다. 70일간 이어진 폭우가 끝난 뒤, 인류는 다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호소에서 자라 성인이 된 이소는 ‘태거 하우스’라는 곳에서 일하게 된다. 이곳은 침수 피해로 유실된 영화 자료를 복원하는 기관으로, 영화를 보고 그에 맞는 주제를 AI에 입력하는 작업, 이른바 ‘태깅’을 수행하는 곳이다.이 작업을 맡은 사람들을 ‘태거’라고 불렀다. 이소는 태거라는 일에 흥미와 적성을 느꼈고, 남들처럼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해고 통보를 받는다.

 

태거하우스의 검열 시스템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이드’가 이소의 작업물에만 반복적으로 오류를 일으켰고 그 원인이 이소의 태깅이 이드의 진화를 촉발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AI의 진화를 막기 위해 이소가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통보였다. 이해할 새도 없이 태거 하우스는 이소를 조직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한다. 도망치던 중, 이소는 우연히 ‘이드’가 있는 장소에 도달하고, 그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의 형태를 한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드는 인간들이 인공지능에게 폭력을 학습시키고 있으며, 모든 태거들이 곧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이소에게 전한다. 그리고 이드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소가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상평

휴먼의 근사치를 읽고 나면, 이런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인간이 아닌 걸까?

 

우리는 종종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을 쓴다. 그 말은 두 가지의 뜻으로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다. 첫째, 능력이 탁월해서 인간을 초월한 존재 같을 때. "저 선수는 인간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경이로운 기량에 감탄한다. 둘째, 도덕성을 상실한 행동을 했을 때. "그런 짓을 하다니, 인간이 아니군"이라고 말하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선을 넘었음을 비난한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성', '인간다움'이라는 말을 굉장히 편리하게 그리고 모호하게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다운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더 깊은 의문에 빠지게 된다. 막상 인간인 사람들이 제일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인간으로 취급 못 받는 인공지능들이 오히려 선을 지킨다. 이것이 단순히 프로그래밍이라는 절대적 선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자유의지가 때로는 우리를 더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다움"이라는 말은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라 공감, 연민, 도덕적 선택의 능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자유의지와 도덕적 선택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타인의 아픔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다움의 본질이 아닐까싶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

인간은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K는 인공지능의 논리가 무한히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해질 거라고 했다. 인간이라면 행동의 결과값이 비도덕적인 것으로 결론 날 경우, 그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산해 그 안에서 자신을 정당화시킬 합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논리값을 쌓는 과정이 지속되다 보면 우리의 논리도 그렇게 변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다가 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망하지 않기 위해서 멈출 수 있는 선택값을 부여하는 거라고 했다